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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미 신화가 됐다.
지금은 '옥경이' 를 노래하는 구세대 앞에서 신세대는 '오, 지니~' 를 외친다. 비록 영화나 노래제목에 나타나는 몇 자 안되는 이름이지만, 세대차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름에 있어서도 유행에 민감한 건 여자인 듯하다. '뚱보 - 홀쭉이' '키다리 - 꼬마' 라는 꼬리표를 덧붙여야 겨우 구분이 됐던 그 많은 60년대의 미자, 순자, 70년대의 은영, 미경이는 이제 누구 누구의 할머니나 엄마가 돼 버렸다.
대신 요즘 초등학교 출석부엔 보람, 다운이가 몇 명씩 - . '윤하늘빛따사로움온누리에'처럼 '이름 석 자' 아닌 '이름 열 두 자' 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유행만큼은 본인 뜻과는 상관없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 또는 작명가가 지어 준 이름으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동 운명체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한다.
살아 있을 때 뿐이랴. 시신은 한줌 재로 변했어도 해맑은 눈망울을 지녔던 '박초롱초롱빛나리'양의 이름은 영원히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의 가슴 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
그만큼 이름에 얽힌 일화들과 이름의 변천사는 그 당시 사회상과 역사를 읽게 해주는 좋은 자료들이 된다.
사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여자나 천한 계급 사람들에겐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인하대문과대학장 김문창 (金文昌) 교수는 "한자가 들어오기 전 고대 역 사책에 등장하는 이름을 보면 '혁거세' '이사부' '거칠부' '사다함' 등 토박이 우리말에 바탕을 둔 독특한 세 음절 이름이 많았다" 고 말한다 . 이것이 한자가 보편화된 통일신라 이후부터 차츰 중국식 두 음절 이름으로 통일되었다는 것. 돌림자가 생긴 것도 이 때쯤부터.
우리 이름이 최 대의 수난을 겪게 된 것은 역시 일제시대다. 창씨개명 (創氏改名)의 강요로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320만 가구의 조선인이 이름을 바꾸었고, 여자의 경우 '자 (子)' 나 '지 (枝)' , 남자 는 '랑(郎)', '웅(雄)', '식(植)', '일(一)' 등이 그 잔재로 남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나라에만 창씨개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1940년대 유럽이나 미국의 유태인들 중에는 나치의 압박을 피하거나 사회적 출세를 위해 유태인식 이름을 스스로 버린 경우도 많았다. 하긴 이름을 꼭 하나만 가졌던 것도 아니다. 한자이름과 함께 중국에서부터 전해져 온 관습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먼저 어린 시절에 부르던 아명(兒名) 과 성인식(冠禮) 후에 부르던 관명(冠名)이나 자(子)가 있다.
옛날엔 이름이 천해야 오래 산다고 해서 고종 황제의 아명도 '개똥이' 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또 '우아한 호 (號)' 란 뜻의 아호(雅號)나 본래는 집의 이름을 뜻하면서 그 집 주인도 일컬었던 당호(堂號) 등을 부르기도 했다. 신문 지상에 등장하는 '허주 (虛舟)'는 바로 신한국당 김윤환 (金潤煥) 의원의 아호.
본인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성격이나 특징등에 의해 지어 주다 보니 조선조 학자 김정희 (金正喜)는 '추사 (秋史)'를 비롯, 503개나 되는 호를 갖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중문화,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예명이나 PC 통신, 인터넷ID가 또다른 이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선 '마리온 마이클 모리슨', '노르마 진'이란 진부한 이름의 배우들이 '존 웨인', '마릴린 먼로'라는 예명으로 대스타가 됐고, '신성일'이란 예명이 너무 유명했던 한국의 배우는 국회의원 출마를 하며 '강신영'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강신성일'이 됐다. 또 '1524', 'syh'처럼 의미있는 숫자나 영문이름 첫자를 따거나 '흑장미' '데릴라' 'momo', 'newspoet' 등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고른 통신ID들은 지방이나 지구촌 건너편 이들까지도 친구로 만들어 준다.
무역업이나 호텔업 종사자들의 명함에서 영어이름을 발견하는 건 이젠 예삿일. 심지어 유치원생들조차 영어학원에서 부르는 영어이름을 따로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
이름 뿐 아니라 이름을 짓는 방법도 달라졌다. 박영미(28.서울시 구로구 독산동)씨는 지난해 태어난 딸아이에게 '김현규'라는 남편 이름 첫자와 자신 이름 첫자를 따서 '영현'이란 이름을 지었다 .
그런가 하면 성명학을 기초로 한 작명소들이 인터넷에도 등장, 부모들이 집에 앉아서 이름을 지어받을 수 있다. 한 번 이름을 지어 받는 데 7만~20만원이 든다.
이름.
비록 타인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사회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여성들이 '미스'나 '엄마'보다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국제화도 좋지만 이름조차 국적을 잃어가는 세태를 보면 안타깝다는 이름 연구가 배우리 씨의 말은 한번 쯤 새겨들을 만하다.
지금은 '옥경이' 를 노래하는 구세대 앞에서 신세대는 '오, 지니~' 를 외친다. 비록 영화나 노래제목에 나타나는 몇 자 안되는 이름이지만, 세대차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름에 있어서도 유행에 민감한 건 여자인 듯하다. '뚱보 - 홀쭉이' '키다리 - 꼬마' 라는 꼬리표를 덧붙여야 겨우 구분이 됐던 그 많은 60년대의 미자, 순자, 70년대의 은영, 미경이는 이제 누구 누구의 할머니나 엄마가 돼 버렸다.
대신 요즘 초등학교 출석부엔 보람, 다운이가 몇 명씩 - . '윤하늘빛따사로움온누리에'처럼 '이름 석 자' 아닌 '이름 열 두 자' 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유행만큼은 본인 뜻과는 상관없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 또는 작명가가 지어 준 이름으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동 운명체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한다.
살아 있을 때 뿐이랴. 시신은 한줌 재로 변했어도 해맑은 눈망울을 지녔던 '박초롱초롱빛나리'양의 이름은 영원히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의 가슴 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
그만큼 이름에 얽힌 일화들과 이름의 변천사는 그 당시 사회상과 역사를 읽게 해주는 좋은 자료들이 된다.
사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여자나 천한 계급 사람들에겐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인하대문과대학장 김문창 (金文昌) 교수는 "한자가 들어오기 전 고대 역 사책에 등장하는 이름을 보면 '혁거세' '이사부' '거칠부' '사다함' 등 토박이 우리말에 바탕을 둔 독특한 세 음절 이름이 많았다" 고 말한다 . 이것이 한자가 보편화된 통일신라 이후부터 차츰 중국식 두 음절 이름으로 통일되었다는 것. 돌림자가 생긴 것도 이 때쯤부터.
우리 이름이 최 대의 수난을 겪게 된 것은 역시 일제시대다. 창씨개명 (創氏改名)의 강요로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320만 가구의 조선인이 이름을 바꾸었고, 여자의 경우 '자 (子)' 나 '지 (枝)' , 남자 는 '랑(郎)', '웅(雄)', '식(植)', '일(一)' 등이 그 잔재로 남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나라에만 창씨개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1940년대 유럽이나 미국의 유태인들 중에는 나치의 압박을 피하거나 사회적 출세를 위해 유태인식 이름을 스스로 버린 경우도 많았다. 하긴 이름을 꼭 하나만 가졌던 것도 아니다. 한자이름과 함께 중국에서부터 전해져 온 관습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먼저 어린 시절에 부르던 아명(兒名) 과 성인식(冠禮) 후에 부르던 관명(冠名)이나 자(子)가 있다.
옛날엔 이름이 천해야 오래 산다고 해서 고종 황제의 아명도 '개똥이' 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또 '우아한 호 (號)' 란 뜻의 아호(雅號)나 본래는 집의 이름을 뜻하면서 그 집 주인도 일컬었던 당호(堂號) 등을 부르기도 했다. 신문 지상에 등장하는 '허주 (虛舟)'는 바로 신한국당 김윤환 (金潤煥) 의원의 아호.
본인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성격이나 특징등에 의해 지어 주다 보니 조선조 학자 김정희 (金正喜)는 '추사 (秋史)'를 비롯, 503개나 되는 호를 갖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중문화,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예명이나 PC 통신, 인터넷ID가 또다른 이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선 '마리온 마이클 모리슨', '노르마 진'이란 진부한 이름의 배우들이 '존 웨인', '마릴린 먼로'라는 예명으로 대스타가 됐고, '신성일'이란 예명이 너무 유명했던 한국의 배우는 국회의원 출마를 하며 '강신영'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강신성일'이 됐다. 또 '1524', 'syh'처럼 의미있는 숫자나 영문이름 첫자를 따거나 '흑장미' '데릴라' 'momo', 'newspoet' 등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고른 통신ID들은 지방이나 지구촌 건너편 이들까지도 친구로 만들어 준다.
무역업이나 호텔업 종사자들의 명함에서 영어이름을 발견하는 건 이젠 예삿일. 심지어 유치원생들조차 영어학원에서 부르는 영어이름을 따로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
이름 뿐 아니라 이름을 짓는 방법도 달라졌다. 박영미(28.서울시 구로구 독산동)씨는 지난해 태어난 딸아이에게 '김현규'라는 남편 이름 첫자와 자신 이름 첫자를 따서 '영현'이란 이름을 지었다 .
그런가 하면 성명학을 기초로 한 작명소들이 인터넷에도 등장, 부모들이 집에 앉아서 이름을 지어받을 수 있다. 한 번 이름을 지어 받는 데 7만~20만원이 든다.
이름.
비록 타인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사회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여성들이 '미스'나 '엄마'보다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국제화도 좋지만 이름조차 국적을 잃어가는 세태를 보면 안타깝다는 이름 연구가 배우리 씨의 말은 한번 쯤 새겨들을 만하다.